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체제 교체의 실패 === 미국은 아프간을 친미 성향의 [[민주주의]] 정부가 통치하는 나라로 바꾸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왕정 - 공산주의 정권 - 무자헤딘 정권 - 탈레반 정권으로 이어지며 탄압과 권위주의가 전제된 역사와 정치적인 토양을 가지고 있었다. 카불에서 벗어나면 바로 무슬림 공동체의 규범인 샤리아와 파슈툰인 고유 규범인 파슈툰왈리로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부족 단위의 사회인 관계로 이런 아프가니스탄을 곧장 민주주의 국가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이 선택하는 것이지, 외세가 일방적으로 쳐들어와 세워놓거나 우연히 알아서 성립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외세가 들어오는 족족 완강하게 저항했고, 계속해서 토착 세력이 외국발 정권을 전부 무너뜨렸다. 당장 공산주의 정권부터가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던 현지인 무자헤딘들에게 축출되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형성된 이슬람주의가 국민들의 전통이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는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하는 연고주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막무가내로 민주주의를 주입할 경우, 국민들은 늘 해왔던 것처럼 전통적 가치를 선택하므로 [[예멘]]이나 [[필리핀]]처럼 지주와 토호들이 실권을 잡거나 [[무함마드 무르시]] 시절의 이집트처럼 종교 극단주의 성향 단체가 정권을 잡는다.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탈레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미군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1인1표 민주선거를 하면 반서방, 반세속주의, 반외세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성립될 가능성이 컸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수도인 [[카불]]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개발이 됐고 행정이 작동했으나, 수도권에서 벗어나면 도로망이 부실하고 전기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농촌들이 널려있다. 이런 농촌에선 민주주의 같은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전통적, 종교적 가치에 기반한 반외세 감정이 강한 것이 당연하다. 거기다 지역, 민족마다 언어가 달라서 표준어가 아프가니스탄 국토 전반에 자리잡지 못했으며 오히려 탈레반이 권장하는 [[파슈토어]], [[우르두어]][* 남아시아 이슬람계에서 권위있는 언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 영화와 드라마가 유행하다보니 우르두어 사용 가능 인구가 더 늘어난 것도 있다.]가 부족들의 공용어 역할을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근대적 교육의 부재로 문맹률이 높았다. 교육받지 못한 국민은 일부 유력자의 부정부패를 제어할 능력이 없으며, 인권과 개인의 자유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밑바탕이 되는 마인드셋조차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아프간을 서유럽식 현대 국가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부패 문제로 인해 경제 개발이 지지부진함으로써 이루어지지 못했다. 탈레반을 무찌르고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구성한 북부동맹 군벌 상당수 역시 실질적으로는 또다른 이슬람 원리주의자 그 자체에 [[마약 카르텔]] 두목 또는 아프리카 군벌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부도덕한 인물들 투성이었다. 애초에 북부동맹을 형성한 '''무자헤딘''' 군벌들은 세속주의자들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시절 공산주의 정부의 반종교 및 국가 무신론 정책에 맞선 이슬람주의자들이었다.[* 개중에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 등의 서방 관점에서도 온건하고 신사적인 경우도 분명 존재는 했으나 전체로 보면 소수에다가 그나마도 알 카에다의 정밀한 암살에 사라졌다.] 즉, 상술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탈레반과 북부동맹의 종교적, 문화적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자기들 편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해줬다고 해서 탈레반에 맞서는 집단을 순식간에 서구적이고 세속적으로 뒤엎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부르하누딘 라바니]]가 1992년 나지불라 정권을 타도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탈레반 정권과 본질적으로 마찬가지인 [[이슬람주의]]에 근거한 이슬람 국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 Islamic State of Afghanistan. [[ISIL|이슬람 국가 호라산 지부]]와는 무관하다.]의 건국이었다. 부르하누딘 라바니가 아흐마드 샤 마수드를 아꼈기 때문에 그를 개념있는 온건파로 생각할 수 있는데, 라바니는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의 극단주의 이론에 경도되었던 사람이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 시절 이들이 시행한 조치들은 술집을 폐쇄하고,샤리아를 공식 법률로 정하고, 여성에게 이슬람식 의복을 입을 것을 명령하는 전형적인 이슬람주의자적 행보였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자 다시 정권을 탈환한 무자헤딘 군벌들은 또다른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대신 미국의 입김에 떠밀려 [[이슬람 민주주의]]에 근거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출범시켰지만, 이 국가조차도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공화국과는 백만년 정도 떨어져 있었다. > 저의 목소리는 의회 내에서도 언제나 무시당하고 있고 진실을 말하려고 했을 때 마약상인 및 친군벌 성향의 의원들에 의해 신체적인 공격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한 의원이 "저 년을 강간하고 창녀로 만들어라!"고 외친 적도 있습니다. 저는 총을 싫어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무장한 보디가드들의 보호를 받아야 했습니다. >---- >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아프가니스탄 여성 국회의원의 증언. 의회에서 대놓고 특정 여성 의원을 겨냥하여 '강간하라', '창녀로 만들라' 같은 비상식적인 폭언이 나왔으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51924#0DKU|#]][* 해당 기사는 지나치게 반미주의적인 관점 + 파슈툰 부족주의 관점에서 작성되었다는 문제가 있지만, 탈레반 몰락 이후에도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한 여성 인권 억압이 제대로 시정되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탈레반에 직접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유하기는 했지만 북부동맹을 형성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탄생시킨 무자헤딘 군벌들도 애초에 [[오십보백보|종교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 아프간의 비극이었다. 샤리아와 코란의 해석에 있어 북부동맹 쪽이 조금 더 세속적이고 관대하긴 했다는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예 종교와 거리를 둔 터키의 케말주의나 시리아와 이집트 바트당의 아랍 사회주의와는 달리 북부동맹의 이념은 이슬람에 기초해 있었다. 탈레반이 부르카를 뒤집어쓰지 않은 여성을 살해하거나 구타했다면 무자헤딘 군벌들은 히잡을 쓸 것을 강권하는 정도로 만족했지만 그들도 분명히 이슬람교가 아프간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거나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는 위치에서 내려오길 원하지 않았다. 결국 또다른 종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정권을 넘겼을 뿐이지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 풍조는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이슬람 극단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체념 상태로 파키스탄, 아랍 에미리트, 튀르키예 등으로 난민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다.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계속 해외로 이탈하는 반면 탈레반 구성원들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계속 충원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탈레반의 통치에 거부감을 크게 느끼던 카불 등의 대도시와는 다르게 아프간의 지방 농촌은 탈레반 이전이나 이후나 외부 문물 확산도 제한적인 몹시 폐쇄적인 전통주의 사회였기에 다시 반란을 일으켜 미군과 협력자들을 쫓아내자는 탈레반의 주장에 넘어가기도 쉬웠다. 해외에서도 미국의 개입을 소련의 침공과 동일한 이슬람 세계에 대한 도전이자 모욕으로 간주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몰려들어 후퇴한 탈레반이 기회를 노리고 있던 산악지대에 유입되기까지 했다. 탈레반에 동조적인 아프간인을 모병하건 이 아프간 외부 출신 테러리스트들을 무장시키건 탈레반은 안정적으로 병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 미국의 매거진 ‘내셔널지오그래픽’은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간 [[칸다하르]]주에 위치한 한 부족을 소개했다. 강변을 낀 마을에서 살고 있는 부족의 원로는 한탄하듯 말한다. “20년 동안 전 세계가 이 나라에 들어왔고 해외에서 돈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우리에게는 어떤 도움을 줬는지 모르겠다. 만약 물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면, 만약 전기가 들어온다면 우리는 아마도 전쟁 대신에 물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만약 도로가 포장됐다면 지금과 같은 재앙은 없었을 것이다.” 대신 그는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미국의 침공으로 축출됐지만 변한 건 없다고 말했다. “칸다하르에 우리에게 필요한 시설이 지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지역에 있는 유일한 대규모 병원은 1970년대에 중국인들이 지은 게 전부다. 주도(州都)인 칸다하르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2021/08/22/6FB7AJ2ZWFBTNBS6NKGJ5BLOYY/|출처]] 아프간의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이 쏟아부은 지원금은 고위 관료들의 공돈으로 유용되면서 그들의 해외 계좌로 빠져나가버렸다. [[탈레반 정권]]의 [[모하마드 오마르]] 등도 취미로 [[샹들리에]]를 수집하는 등 [[김정일|사치와 낭비가 극심했지만 적어도 자신은 초라한 오두막집에서 검소하게 산다고 선전하면서 국민들 몰래 사치를 즐긴 반면]], 미국이 세운 아프가니스탄 정권 유력자들은 미국의 개발 지원금을 삥땅친 돈으로 대놓고 사치를 일삼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미국이든 친미 정부건 좋아할 수 있을리가 없다. 결정적으로, 90년대 내전 때부터 지역의 토호이자 실력자들로 군림한 군벌들이 과거에 끼친 민폐나 만행에 대한 청산이나 진상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가장 악명높은 대군벌이었고 미국과 정부에 총을 들이밀기까지 했던 [[굴부딘 헤크마티아르]]조차도 친정부 인사로 전향하자 그동안 저지른 만행과 전횡에 대해 처벌과 조사를 받기는커녕 정계에 입문하는걸 허락받는 등 사회적 합의조차 없는 면죄부를 받았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 시절마냥 이슬람주의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이슬람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실상은 부패 군벌들의 불안불안한 사상누각 연립 정권이자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공화국]]처럼 사실상 미국 정부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급조된 한계국가에 가까웠던 것이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근대적인 의미의 정부는 전부 붕괴되었기 때문에 소련과 공산주의, 그리고 나중에는 자기 자신들과 탈레반에 맞선 경력이라도 있던 무자헤딘 군벌들과 손을 잡지 않고는 국가 건설과 통치 자체가 불가능했겠지만, 이들도 탈레반보단 낫다 뿐이지 문제가 많았는데다가 무엇보다 매우 탐욕스럽고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지도층의 지원금 횡령을 통한 부정축재와 아프가니스탄 일대에 만연한 이슬람 근본주의 문화로 근대적 교육을 위한 예산은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고, 문맹률은 여전히 높았으며 국민의식은 형성되지 못했다. 결국 그 전까지 질서를 유지하던 탈레반 조직을 제거함으로써 목표로 했던 체제 변동(regime change)이 실현된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가 붕괴했을 뿐이며, 그 힘의 공백 상태를 부족과 [[군벌]]들이 메움으로써 혼란만 더 가중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